김광석
통기타와 하모니카 하나만으로 청중을 압도했던
김광석.
여전히 80년대를 화두로 삼고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김광석'이란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른바 386세대의
상처입은 감성이었고, 나즈막한 고백이었다. 지독한 싸움의 언저리에서, 자신을 달래며 혹은 추스리며 들었을 아니 불렀음직한 노래가 바로 고
김광석씨의 노래들이다. 그의 호소력 짙은 보컬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이별의 아픔과 사랑의 상처를 떠올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운동권 출신이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적인 역량은 대단한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김민기와 한대수의 맥을
잇는 가수로 인정받으며 90년대에 포크음악을 이어간 그는 대학 4학년 시절,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를 하다가 1984년 당시 대학가 운동권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결성되면서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는 '노찾사'에서 탈퇴하여, 그룹 '동물원'에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거리에서'와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등의 곡으로 그의 감수성과 서정적 아름다움을 과시하였다.
노래에 깊이를 담고 싶었던 김광석은 멤버 전원이 전업가수로서의 길을 거부하는 '동물원'에서 나와 1989년에 솔로로 데뷔한다.
그는 1집에서 그의 음악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자작곡들을 많이 들려주었지만 그만의 색깔을 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2집 '사랑했지만'이라는 곡으로 비로소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애절한 발라드곡으로 인기가수가 되기보다 그의 음악영역을 지키고 싶었던
김광석은 '나의 노래',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광야에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곡들로 9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항상
대중의 노래를 부르며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고 싶었던 그는 1989년부터 1995년까지 1000여회의 라이브 콘서트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하는 듯한 정겨운 말투와 소탈하고 진솔한 무대매너,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인 노래로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미소를 자아내며 팬들과
다정다감한 음악적 교감을 이루어 냈다.
그렇게 대중의 편안한 아저씨로 지내던 1996년 어느날, 갑작스런 '김광석 자살'이라는
비보가 전해졌고 이제 그의 노래는 몇장의 남겨진 앨범에서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 의문사로 남겨져
있다.
< 그림위에 마우스를 놓으면 낙엽이 떨어집니다... >